《 조각보 》 05 - 동양화에서 배우는 나를 믿는 힘
이케바나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저널, #jogakbo 는 작은 천 조각들을 모아 만물을 감싸는 하나의 조각보를 만들었던 선조의 지혜로운 삶을 계승하여, 다채로운 관점의 조화와 깊은 취향의 다양한 면면을 제안합니다.
다섯 번째 큐레이션, 동양화에서 톺아볼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 존수(尊受)의 개념입니다. 동양화는 시, 서, 화가 함께 어우러진 예술 형태로 외연보다 내면을 주목하기에 상징성이 강조됩니다. 대표적으로 ‘선을 긋는다’라는 행위는 자유로우면서 또 독립적이라 일컬어지는데요, 그것이 뜻하는 정신적인 의미와 행위성이 갖는 은유로부터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양화는 동양 철학의 이미지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상중에서 특히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다음의 문장이 있습니다.
夫一劃含萬物於中, 畫受墨, 墨受筆, 筆受腕, 腕受心.
일획은 만물을 함하고 있다. 획은 먹을 받아들이고, 필이 먹을 받아들이고, 필은 팔을 받아들이며 결국 팔은 ‘마음’과 이어진다. -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감으로부터 오는 감수성, 즉 나의 느끼는 바를 존중하는 존수(尊受)의 철학적 개념이 잘 반영되어 있는것이죠.
겸재 정선(鄭歚, 1676-1759년)의 작품이 특히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과거를 빌어 현재를 열어가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통을 학습하나 답습하지 않고, 모든 순간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지점부터 고유한 관점이 반영된 창의성이 탄생할 수 있던 것이죠. 이것은 실존주의 철학과도 궤를 함께하는 ‘나는 나를 이룬다. 스스로 있음으로써 내가 존재한다.’라는 자유아지를 의미하며, 이러한 사상을 기저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분별 의식을 빌어 감수한 바를 발현시키고, 그 느낀 바를 자각하여 의식한 것을 발하는 태도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존수(尊受)로 기존의 질서를 넘어설 수 있는 용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위 구절을 되뇌어보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믿음만이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걸, 저는 믿으니까요.
Editor : 백자인 (@paikxx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