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보 》 02 사랑은 무엇을 건네어 줄까요?
이케바나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저널, #jogakbo 는 작은 천 조각들을 모아 만물을 감싸는 하나의 조각보를 만들었던 선조의 지혜로운 삶을 계승하여, 다채로운 관점의 조화와 깊은 취향의 다양한 면면을 제안합니다.
두 번째 큐레이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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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중 주인공 조제는 양 다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살게된 고아원에서 탈출해 늙고 병든 할머니와 함께 살아갑니다. 조제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조제를 위해 할머니는 사람들이 내다 버린 책을 구해주었고, 조제는 할머니가 구해준 책을 통해 세상을 엿보았습니다. 바깥 구경을 원했던 조제를 위해 할머니는 매일 아침 일찍 유모차를 끌고서 산책에 나섰습니다. 온몸을 담요로 둘둘 싸맨 체 동네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의 정체에 대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수군댑니다. 이렇듯 주인공 조제와 늙은 할머니의 삶은 함께 나약한 삶에 놓였습니다.
그런 조제를 세상과 연결해 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대학생 츠네오입니다. 할머니가 유모차를 놓친 어느 날 만나게 된 두 남녀는 급속도로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갖습니다. 물론 초반의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초반의 조제에게 츠네오는 자꾸 집에 찾아와 밥을 해달라 조르는 귀찮은 사람이었고, 초반의 츠네오에게 조제는 방구석에 박혀 사는 불쌍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론 자꾸 궁금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제에게 츠네오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둘의 관계는 점차 변화합니다. 서로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한한 시간 앞에 사랑은 나약한 존재인가 봅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츠네오의 사랑은 점차 부담이자 짐이 되었고, 조제에겐 츠네오가 세상과 소통할 유일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조제는 츠네오와 떠난 여행에서 츠네오의 사랑이 먼저 떠나버렸음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둘은 낮에 가지 못한 수족관 대신 물고기 여관으로 들어갑니다. 여관에서 조제는 츠네오와 '뜨겁고 야한 섹스'를 함께 한 뒤 서글픈 표정으로 벽을 봅니다. 물고기가 벽을 유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제는 츠네오에게 말을 건넵니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은 깊고 어두운 바닷속이야.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오지 않아. 정적만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깐.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계속 굴러다니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아."
그로부터 몇 달 뒤,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 카나에를 다시 만나 조제와 함께 살았던 동네를 빠져나옵니다. 길 위에서, 츠네오는 카나에의 말에 하나도 집중하지 못합니다. 들리지 않는 카나에의 말소리 대신 도시의 소음이 츠네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그는 이내 주저앉아 웁니다. 조제의 결핍을 끝내 감당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의 눈물이자, 한때는 정말 사랑한 존재를 잃었을 때 흘리는 상실의 눈물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제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합니다. 조제는 츠네오를 잃고서 비로소 세상과 진정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랑과 이별은 이렇게 서로에게 다른 방식의 선물을 줍니다. 츠네오에겐 부끄러움과 성장을, 조제에겐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주었듯이요.